![신안 흑산도에서 보이는 장도. 장도에는 람사습지로 지정된 장도습지가 있다.[사진=홍선기 교수]](https://cdn.polinews.co.kr/news/photo/202504/688917_499018_4724.jpg)
신안 흑산도에서 보이는 장도. 장도에는 람사습지로 지정된 장도습지가 있다.[사진=홍선기 교수]
ESG(Environmental, Social, and Governance)는 기업과 기관의 지속가능성을 평가하는 핵심 기준으로 자리 잡고 있다. 겉보기엔 비정치적이고 중립적인 개념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정치적 상황과 정권의 특성에 큰 영향을 받는다. 특히 환경 규제, 노동·인권 이슈, 기업 지배구조 등은 국가마다 정치 이념과 정책 방향에 따라 해석과 실행의 방식이 달라진다.
한국의 경우, ESG는 문재인 정부 시절 ‘그린뉴딜’과 탄소중립 정책과 함께 본격적으로 공론화되었다. 정부 차원의 K-ESG 가이드라인 마련, 공공기관의 ESG 평가 도입 등은 ESG가 정책화되는 과정이었다. 그러나 윤석열 정부 들어서면서 ESG에 대한 정부의 접근이 보다 ‘자율적’이고 ‘시장친화적’ 방향으로 전환되는 모습을 보인다. 노동권 강화나 재벌 지배구조 개선 같은 ESG의 'S'와 'G' 요소는 정치적 민감성을 띠며 정책적 우선순위에서 밀려나는 경향이 있다. 환경(Environment), 사회(Social), 지배구조(Governance)의 앞 이니셜로 구성된 ESG 개념은 이제 기업만이 아니라 지방정부, 공공기관, 국제개발 기구까지도 적용하는 하나의 ‘표준’처럼 여겨진다.
이 개념이 정말 비정치적일까? 특히 섬과 바다, 즉 국경의 경계이자 자원의 보고인 해양 공간에서는 이야기가 조금 다르게 흘러간다.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건 환경(Environment) 부문이다. 섬 지역은 해수면 상승, 해양오염, 기후변화의 직격탄을 맞고 있는 곳이다.
제주도나 남도 앞바다의 해조류는 예전처럼 풍성하지 않고, 갯벌은 매립으로 빠르게 줄어들고 있다. 그런데 이 문제를 어떻게 다룰 것인가는 단순히 과학기술의 문제가 아니다. 정권이 환경보호를 우선하는가, 개발을 우선하는가에 따라 전혀 다른 길이 열리기 때문이다.
예컨대, 특정 지역의 해양보호구역(MPA) 지정을 두고 주민들과 정부가 충돌하는 경우가 있다. 생태계를 살리는 일이라 해도, 생계와 직결된 어업 제한 조치는 거센 반발을 부른다. 이런 갈등을 해결하려면 단지 ‘환경이 중요하다’는 선언이 아니라, 정치적 협상과 조정, 신뢰의 거버넌스가 필요하다. 사회(Social) 영역에서도 섬과 바다는 특수한 조건을 가지고 있다.
섬 주민들의 삶은 물리적 고립 속에서 전통 지식과 공동체 중심의 문화가 깊게 뿌리내리고 있다. 그런데 정부의 정책이 섬 주민의 참여 없이 일방적으로 결정될 경우, 공동체 기반의 해양문화는 쉽게 무너진다. 대표적인 예로, 신안군 흑산도 공항 건설 논란을 들 수 있다. 다도해해상국립공원 내 흑산도에 공항을 짓는 계획으로, 환경부 국립공원위원회가 수 차례 환경성 부족으로 보류했음에도 정치적 압력으로 추진 중이다. 일부 주민과 지자체는 관광 활성화를 기대하며 찬성하지만, 또 다른 주민들과 환경단체는 생태계 파괴와 섬 고유성 훼손을 우려한다.
![청정한 바다, 건강한 산업은 지역 공동체의 협력으로 이뤄진다.(부산 가덕도 인근 해역)[사진=홍선기 교수]](https://cdn.polinews.co.kr/news/photo/202504/688917_499019_5057.jpg)
청정한 바다, 건강한 산업은 지역 공동체의 협력으로 이뤄진다.(부산 가덕도 인근 해역)[사진=홍선기 교수]
ESG의 측면에서 볼 때, 국립공원 생태축 파괴 가능성(E), 관광중심 개발과 생태기반 유지에 대한 주민 갈등(S), 과학적 검토보다 정치적 압력에 강한 의사결정 구조(G) 등 문제를 일으켰다. 새만금 개발사업이나 4대강 사업과 같은 국가 주요 토목 사업은 충분한 시간을 두고 논의를 한 것 보다는 5년의 정치적 권력이 조기에 정치적 실적을 내기 위한 것으로 ESG 정신을 전면적으로 무시한 초법적 사례라고 볼 수 있다. 그 환경적 후유증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이처럼 ‘사회적 가치’를 따지는 ESG의 S 항목은 결국 누가 참여하고, 어떤 목소리가 정책에 반영되는가에 달려 있다. 이건 명백히 정치의 영역이다.
거버넌스(Governance)도 예외는 아니다. 섬과 해양 지역은 중앙정부의 영향력은 크지만, 실질적인 주민 참여는 제한되는 경우가 많다. 해양 공간에서의 개발 사업, 양식장 배치, 외국인 선원 노동 문제 등은 복잡한 권력 구조 속에서 처리된다. 특히 어촌계나 지역 협동조합이 실질적인 의사결정권을 갖지 못할 경우, ESG 원칙은 겉도는 슬로건에 그치기 쉽다.
반면, 일본의 아마미 군도나 우리나라 일부 섬의 어업 공동체처럼 주민 주도형 해양 관리 모델이 실현되는 경우, ESG의 가치는 실질적인 제도로 정착된다. 이처럼 ‘좋은 지배구조’는 지역 현실에 맞는 분산적, 협력적 정치 구조 없이는 구현되기 어렵다. 최근 미국에서는 ESG가 아예 정치적 논쟁의 중심에 섰다. 트럼프 정권의 공화당 주정부들이 ESG 투자를 ‘좌파적’이라며 거부하고, 기업에 ESG 기준을 적용하지 말라고 법을 만들고 있다.
한국도 마찬가지다. 어떤 정권에서는 ESG가 탄소중립과 함께 적극 추진되지만, 다른 정권에서는 규제 완화와 기업 자율을 강조하며 뒷전으로 밀리기도 한다. 커먼즈로서 자원의 지속가능성을 더욱 강조해야 할 섬과 해양에서야말로 ESG는 가장 정치적인 개념이다. 지속가능성은 선언만으로는 이뤄지지 않는다. 그것은 누구의 목소리가 제도에 반영되느냐, 어떤 이해관계가 우선순위로 작동하느냐에 따라 결정된다. ESG는 섬 주민과 바다 공동체를 위한 실질적 도구가 될 수도 있지만, 그 반대가 될 수도 있다. 우리가 이 개념을 얼마나 정치적으로 이해하고 실천하느냐에 그 성패가 달려 있다.
출처 : 폴리뉴스 Poli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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