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입력 2025.05.18 15:00

정책이 사라졌다. 반복되는 일이다. 대선이 치러질 때마다 정책은 실종되고, 후보들은 정쟁과 이미지 경쟁에 몰두한다. 지난 대선도, 그 전 대선도 결국 ‘정책 없는 정치’의 전형이었다. 수사와 감정, 갈등과 대립의 구호는 넘쳐났지만, 대한민국을 어디로 이끌 것인지에 대한 구체적인 비전은 좀처럼 보이지 않았다. 정책은 단지 공약을 나열하는 것을 넘어, 사회와 국가의 방향을 제시하는 나침반이자 시대정신의 반영이어야 한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그 나침반 없는 항해 속에서 또다시 ‘눈치보기’의 정치를 반복하고 있다.
그 가운데 가장 눈에 띄게 소외된 영역이 있다. 바로 섬이다. 대선이 치러질 때마다 온 나라가 경제, 외교, 안보, 부동산 등 굵직한 이슈에 집중하는 사이, 섬은 언제나 우선순위에서 밀려난다. 이는 단순히 특정 지역이 빠졌다는 문제가 아니다. 대한민국 정책 담론의 중심축이 수도권 중심, 내륙 중심, 대도시 중심으로 고정돼 있다는 증거다. 지역의 다양성, 공간의 형평성, 공동체의 지속가능성은 뒷전으로 밀리고, 눈에 보이는 단기성과와 계량적 성과지표만이 정책 우선순위를 결정한다. 그 결과 섬은 단지 ‘관광지’나 ‘풍경’으로만 소비되고, 섬 주민의 삶은 정책의 공백 속에 방치된다. 지금 이 흐름이 바뀌지 않는다면, 섬은 앞으로도 결코 대선의 주제가 될 수 없을 것이다.
더욱 우려스러운 점은 이러한 ‘무정책’의 구조가 낙후된 지역일수록 더 심각하게 드러난다는 사실이다. 특히 섬 정책은 거의 전면에서 배제되어 있다. 대한민국은 약 3,300개가 넘는 섬을 가진 다도해 국가임에도 불구하고, 섬은 정책의 사각지대에서 머물고 있다. 이번 대선도 예외는 아니었다. 어느 후보도 섬의 현실과 미래를 정면으로 이야기하지 않았다. 연안여객선 공영제, 섬 의료공백 해소, 청년 정주 지원, 블루카본 생태 자산화 등 당장 풀어야 할 과제는 수없이 많지만, 어떤 캠프에서도 이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이나 의지를 보여주지 않았다.
이제는 정치가 아닌 정책의 언어로 섬을 말해야 한다. 섬은 더 이상 고립된 공간이 아니다. 기후위기 시대의 대응 전초기지이자, 해양영토의 전략 거점이며, 미래세대를 위한 생태적 자산이다. 특히 신안군에서 추진된 햇빛연금은 섬 자원의 공유를 통해 지역 공동체의 새로운 활력을 이끌어낸 대표적 사례다. 태양광 발전 수익을 주민과 나누는 구조는 정주 유인을 강화했고, 인구가 증가한 몇 안 되는 섬을 만들어냈으며, 폐교 위기의 학교를 되살리는 기적까지 만들어냈다. 이익공유는 단순한 소득 보전이 아니라, 주민이 섬에 머물 이유를 제공하는 새로운 사회계약이다. 이 모델은 에너지뿐 아니라 해양관광, 바다숲 조성, 김·미역 등 해양자원 전반에 확대 적용 가능하다. 국가는 이를 실험으로 끝내지 말고 제도화하여, 전국의 섬으로 확산할 수 있는 법적·재정적 기반을 서둘러 마련해야 한다. 섬 자원은 개발의 대상이 아니라, 공유와 환원의 철학 위에서 다뤄져야 하며, 이것이야말로 21세기형 균형발전의 핵심이다.
교통과 의료 역시 더 이상 유보될 수 없는 핵심 의제다. 섬 주민들은 기상이 나빠지면 육지로의 접근이 완전히 차단되고, 응급환자가 발생해도 이송은커녕 응급처치조차 받기 어려운 처지에 놓인다. 여객선은 단순한 운송 수단이 아니라, 섬 주민에게는 도로이며 생명선이다. 그러나 현실은 여전히 민간사업자의 수익 논리에 맡겨져 있고, 국가는 고작 일부 시범항로에만 공영제를 제한적으로 적용하고 있다. 지금 필요한 것은 해상교통을 철도·도로와 같은 국가 인프라로 인식하고, 공공적 운영체계를 정착시키는 것이다. 의료 서비스도 마찬가지다. 노령 인구가 높은 섬 지역의 특성을 고려하면 원격의료, 이동진료, 응급이송체계가 유기적으로 통합되어야 한다. ‘섬 닥터’ 같은 특화된 인력 배치와 헬기·도선 연계 응급망, 후송 시스템 구축은 단순한 복지정책이 아닌, 생존을 위한 국가책무다. 국가가 국민의 생명을 어떻게 대우하는지를 가늠하는 잣대가 바로 여기에 있다.
차기 정부는 섬을 더 이상 ‘없는 지역’으로 남겨두어서는 안 된다. 섬 정책은 이제 국가의 주요 어젠다가 되어야 하며, 균형발전의 사각지대가 아닌 최전선으로 재위치되어야 한다. 지금 이 전환을 이루지 못한다면, 우리는 또다시 ‘없는 정책’, ‘없는 목소리’, ‘없는 국민’을 반복하게 될 것이다. 섬을 기억하는 정치, 섬을 말하는 정책. 그것이 대한민국이 진정한 복지국가, 균형국가로 나아가는 출발점이다. 정책은 결국 사람의 이야기이고, 그 사람이 섬에 살고 있다면, 지금 바로 응답해야 한다.
출처 : 남도일보(http://www.namdo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