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입력 2025.06.22 17:00

섬은 바다로 둘러싸인 고립된 공간이지만, 그 속에는 강한 공동체성과 삶의 지혜가 응축되어 있다. 특히 섬에서 열리는 축제는 단순한 지역행사가 아니라, 섬 주민들의 정체성과 삶의 리듬을 보여주는 살아있는 문화유산이다. 섬의 축제는 외지인에게는 비일상적 경험이지만, 섬 주민에게는 세대와 세대를 잇는 삶의 맥락이며, 공동체를 지탱하는 보이지 않는 그물망이다.
전남 진도군의 ‘신비의 바닷길축제’, 신안 도초도 ‘밤다래’, 울릉군의 ‘오징어축제’는 각 섬의 고유한 생태환경과 전통문화를 기반으로 개최되는 대표적인 지역축제이다. 진도 신비의 바닷길축제는 바닷물이 갈라지며 일시적으로 드러나는 해로 현상을 주제로 한 자연 중심형 축제이며, 도초도의 밤다래는 마을 주민들이 상가(喪家)를 위해 밤새 함께하며 고인을 기리는 전통 놀이형 장례 의례다. 울릉도의 오징어축제는 지역 특산물인 오징어를 주제로 어업문화와 해양 먹거리 체험이 중심을 이룬다. 이들 축제는 단순한 관광 이벤트를 넘어, 섬 주민들의 일상과 공동체 문화를 보존하고 계승하는 데 의미가 있다.
무엇보다 섬의 축제는 단순한 ‘볼거리’가 아니다. 그것은 섬 주민들 스스로가 기획하고 운영하는 ‘살림의 기술’이자 ‘공동체의 의례’다. 농사를 마친 뒤 풍년을 기원하며 열리는 잔치, 어업의 안전과 바다의 안녕을 비는 제례, 마을 공동체를 중심으로 하는 전통 놀이와 음식 나눔은 모두 축제를 통해 되살아난다. 이처럼 축제는 섬 주민들의 일상을 공적으로 드러내고, 섬의 문화를 유지하고 확산시키는 실천이기도 하다.
최근에는 젊은 예술가들이 섬에 머물며 축제를 통해 새로운 실험을 시도하고 있다. 주민들과 함께 벽화를 그리고, 마을의 이야기를 무대 위에 올리는 등 종교, 예술, 생태적 감수성을 결합한 관광 활동은 세대 간 소통과 외부와의 교류를 가능하게 한다. 이러한 창의적인 접근은 섬 축제의 전통과 현대를 조화롭게 연결하며, 축제를 단순한 놀이가 아닌 지역재생의 실험장으로 전환시키고 있다.
그러나 최근 섬의 축제는 여러 갈림길에 놓여 있다. 첫째, 축제의 형식이 관광지 중심의 상업화로 치우치면서 섬의 정체성과 동떨어지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 섬 고유의 생태, 역사, 문화보다는 외부 방문객 유치를 위한 이벤트성 프로그램이 우선되면서 주민의 참여가 줄고, 축제 본연의 의미도 희석되고 있다. 둘째, 주민 고령화로 인해 축제 운영 주체가 사라지는 문제도 크다. 전통놀이를 재현하거나 마을음식을 준비하는 인력이 줄어들면서 축제의 지속성도 위협받고 있다. 결국 섬의 축제가 ‘우리 것’이 아니라 ‘외부인을 위한 전시물’로 전락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섬 축제의 미래를 위해서는 관광산업과 지역문화가 균형을 이뤄야 한다. 섬의 축제를 단기 수익 창출의 수단이 아닌, 장기적 지역정체성 회복과 공동체 회복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 특히 교육기관, 문화예술단체, 지자체가 함께 연대하여 섬의 축제를 공동체 기반의 문화자산으로 전환하는 노력이 절실하다. 청소년들이 축제를 통해 섬의 전통을 자연스럽게 배우고, 그 안에서 역할을 맡는 구조를 만든다면 축제는 세대 간 계승의 장이 될 수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섬의 축제를 지속가능한 방식으로 유지·발전시키기 위해서는 몇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첫째, 축제의 주체는 반드시 ‘주민’이어야 한다. 섬 주민들이 축제의 기획과 실행에 실질적으로 참여하고, 그 과정을 통해 마을공동체를 강화할 수 있어야 한다. 둘째, 축제의 콘텐츠는 섬 고유의 자연환경과 문화자산에 기반을 두어야 하며, 이를 보존하는 방향으로 운영되어야 한다. 셋째, 행정기관과 지자체는 일회성 예산 지원에 머물 것이 아니라, 축제를 통한 공동체 활성화와 섬문화 계승을 위한 장기적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
섬의 축제는 고립된 공간에서 공동체를 지속시키는 삶의 기술이며, 외부 세계와의 연결을 여는 소중한 창이다. 축제가 열리는 날, 섬은 그저 작은 땅덩어리가 아니라, 수많은 기억과 감정, 노동과 희망이 응축된 ‘살아있는 마을’이 된다. 우리는 그날의 마을로 초대받는다. 그리고 그 속에서 비로소 ‘섬다운 축제’의 진정한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된다.
섬의 축제는 사라져가는 전통이 아니라, 재구성되는 공동체의 미래이다. 이제는 섬의 축제를 통해 고립의 기억을 넘어 연대의 가능성을 만들어야 할 때이다. 이것이야말로 섬의 축제가 우리에게 던지는 깊은 물음이자 제안이다.
출처 : 남도일보(http://www.namdonews.com)